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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운전 못한다고 야단치는 남편에게도 자기 소외가 이뤄지는 것김기철 목사, 여선교회 세움 강좌에서 ‘상호주관적 관계’ 강의
김형준 기자 | 승인 2018.10.02 11:21

- 하나님에 대한 순종도 나다움으로 이뤄져야
- 다름은 하나님의 축복, 그러나 인간은 차별로 이용

세움 강좌의 모습

상호주관적인 관계란 서로 존중받는 관계를 의미한다.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상호주관적인 관계가 이뤄져야 원만한 관계, 바른 신앙으로 성장한다. 감리교회의 목사이자, 배재대학교 상담센터에서 상담하고 있는 김기철 목사는 여선교회전국연합회(회장 백삼현 장로)가 매월 개최하는 세움 강좌에서 상호주관적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강의를 가졌다.

* 세움 강좌는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여선교회관에서 시작된다.

김기철 목사

■ 아내의 운전이 미숙하다고 야단치는 남편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지 말라고 한다. 운전을 시작하는 아내와 남편이 이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점차 감정 싸움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의 운전이 미숙하다고 남편이 화낼수록 아내의 감정도 나빠지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 김기철 목사가 보여준 영상에서는 감정이 상한 관계에서도 남편이 존대말을 하게 하니까 짜증나던 시간은 놀랍게 변하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김기철 목사는 자기 소외와 타자 소외라는 개념에 대해서 먼저 설명한다. 자기 소외는 타자를 인정하는 것에 매몰되어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자기를 숨기는 것을 말한다. 자기를 감추는 거짓자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타자 소외는 자기 주장에 매몰되어 참 자기에 지나치게 이끌리는 것을 말한다.

앞에 사례에서 운전 때문에 구박받는 아내는 어떤 상태일까? 자존감과 사랑과 존중을 경험하신 못한 채 소외가 이뤄진다. 그렇다면 남편은 어떨까?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입장에서도 소외는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사랑하는 자기의 진짜 마음(참 자기)을 표현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서 소외당하는 자기 소외가 일어났던 것이다. 

남자의 경우에는 대개 자신의 진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공감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런 상태를 “스스로 소외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 참 자기(True Self)의 성장

참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생긴다. 아이가 배고플 때 우는 것은 자기를 표현한 것이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거나 배설을 해서 기분이 나쁘면 울음으로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누군가(엄마)가 이것에 대해 반응을 하면 반응에 재미를 느끼고 자기 몸에 나타나는 것을 표현한다. 엄마가 잘 반응할수록 감정을 다 표현하고, 이 경험을 내면화한다. 이런 아이는 참 자기가 잘 발달된다.

반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도 엄마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그때부터 표현하지 않게 된다. 이런 아이들은 성장하면 눈치가 빠르게 되고, 거짓 자기가 발달하게 된다. 실제적인 감정과 표현이 다른 것이다.

김 목사는 “이런 면에서 반항하고 말 대답하고 눈치 없는 아이들이 더 건강하다”라고 말했다.

■ 거짓 자기의 발달

거짓 자기가 발달한 원인에는 엄마의 인격과 관련이 많다. 특히 자기애 성향이 강한 엄마의 자녀들이 그렇다. 이런 엄마들은 자신이 슬프면, 온 세상이 다 슬퍼야 하고, 자기 생일되면 말하지 않아도 남편이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엄마들은 아이들의 반응에 잘 대응해 주지 못한다. 또 자기 기분대로 아이를 키운다. 기분이 좋으면 계속 먹을 것을 주고, 기분 나쁘면 기저귀도 안 갈아준다.

이렇게 엄마가 기분대로 표현하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불안해서 눈치를 본다. 아이는 엄마의 감정에 의해 자기 생존에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자기 감정을 숨기고 엄마에게 맞춰준다. 예를 들어 잠을 잘 자서 기분 좋게 일어나는데, 어머니가 화를 내고 있으면 기분 좋은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이 아이들은 참 자기를 표현하지 않고 남을 맞춰주는 훈련을 한다.

김 목사는 “이 아이들은 사실은 자기 안에 허무함과 허탈감으로 산다”고 말한다. 김 목사가 상담한 한 대학생도 그랬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서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헤어지고 나면 우울하고 내 안이 텅빈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고 고민을 상담해 왔다. 이 대학생이 이런 감정을 갖는 이유는, 남의 분위기를 맞춰주는 거짓 자기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자기 소외가 일어난 것이다.

김기철 목사

■ 육체적 탄생과 사회적 탄생

아이는 태어날 때 엄마와 몸이 분리되기 때문에 태어나서 6개월간 아이에게 집중하고 쏟아 부어야 한다.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서 6개월간 본능적으로 집중하게 되는데, 이때 이것이 잘 되어야 아이가 나라는 과정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2~3살이면 심리적 탄생이 일어난다. 심리적 탄생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거울을 보는 아이의 태도를 보면 된다. 심리적으로 태어나지 않을 때는 거울을 보면서 유심히 들여다 보기는 하지만 그냥 ‘뭐가 있구나’고 생각할 뿐이다. 직립보행하기 시작할 때 거울을 보여주면, 거울을 보면서 수줍어 하거나, 춤을 춘다. 바로 이때가 심리적으로 태어난 때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사회적으로 탄생할 때다. 이때가 바로 유치원에 갈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 목사는 “심리적 탄생이 이뤄지기까지는 공생기”라고 말했다. 즉 엄마와 내가 분리가 안 된다. 심리적 탄생이 이뤄졌을 때야 분리가 비로소 이뤄진다. 그 중간 시기를 과도기라고 한다. 하나였다가 분리되는 시기에 아이는 상호주관적 관계를 겪게 된다. 엄마와 내가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시기다. 한 몸이면서 동시에 엄마와 남남을 경험하는 시기다.

엄마와 내가 한 몸이라고 느낄 때는 엄마 뒤에 있으면 엄마가 드러난다. 그때는 내 주장이 필요가 없다. 엄마만 드러나면 되니까.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아이가 알아서 주관적으로 해야 한다. 그럴 때는 자기 주장이 나타난다. 이렇게 두 가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러할 때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조절되는데, 이 때가 건강해야 사회 생활도 잘 된다고 말한다. 상호주관적 경험이 일어날 때 깊게 자리잡게 되고 평생의 대인관계를 좌우한다. 상호주관적 경험이 잘 이뤄지면 남을 잘 인정해 주는 사람이 된다.

세움 강좌의 모습

■ 하나님과의 상호주관적인 관계란?

김 목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상호주관적인 관계가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께 무조건 복종하는 게 아니라, 나의 주장을 하면서도 순종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순종에는 나의 주장도 들어간다”며 “하나님과 나는 상호주관적 관계이며, 상호주관적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신앙 생활에 영향을 받는다”고 관계를 설명한다.

상호주관적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창의성이다. 그런데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비교하면 첫째보다는 둘째가 더 창의적이다. 왜 그러할까?

첫째를 낳은 엄마는 경험이 없어서 초긴장 상태다. 그래서 아이 옆에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아이는 자기의 불쾌함이나 마음을 표현하면서 창의적으로 표현을 한다. 한번 울 때 엄마가 반응을 안 하면, 다양한 변화를 주면서 표현해 엄마를 움직이려 한다. 이것이 창의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첫째 아이 때는 엄마가 초긴장하면서 지켜보기 때문에 아이가 울자마자 바로 반응한다. 창의성이 발달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반면 둘째 경험을 한 엄마는 바로 반응하지 않고 지켜보면서 좀 여유를 갖는다. 다양한 표현을 할 기회를 아이가 얻게 되는 것이다. 이때 창의성이 발달된다. 하지만 너무 반응을 늦게 하면 아이의 거짓 자기가 발달된다. 따라서 반응 속도에는 적당함이 필요하다.

첫째는 둘째로 인해 엄마의 관심을 잃게 되는데, 1차 창의성이 발달된 아이는 주변 물건을 통해 잃었던 엄마의 품, 엄마의 향을 느끼며 위기를 넘어간다. 어떤 아이는 손가락, 콧구멍을 후비고, 옹알이를 한다. 엄마를 느끼려는 창의적 방법이다. 하지만 창의성을 발달되지 못한 아이는 울기만 한다.

창의성이 발달된 아이는 시의 깊은 의미도 잘 느끼고, 미술 작품을 보면서 메시지도 읽는다. 상징적인 대화도 잘 하며 결국 신앙생활도 잘 한다. 즉 말씀만이 아니라 주변으로부터도 하나님을 잘 느낀다. 모든 것을 보고 하나님을 느끼는 영적인 감수성이 발달된다. 우리는 상호주관적인 관계를 맺을 때 창의성이 드러나고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

세움 강좌의 모습

■ 다름과 낯섦

김 목사는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나오는 경험과 적절한 대응은 상호주관적인 관계에서 맺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서로 존중함에서 관계를 맺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름을 낯설어하고 어떤 경우에는 적대시한다. 그러나 김 목사는 “다른 것은 복”이라고 깨우친다.

하나님이 수많은 인간을 만들 때 다 다르게 만드셨다. 생존하는 인간, 태어날 인간도 다 다르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한정판으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인 것이며,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별됨은  하나님의 은혜다. 다름은 우리 고유의 모습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신 것을 보여준다.

김 목사는 “이렇게 다른 모습을 가진 것에 대해 인간은 차별했다”며 “자기 마음대로 가격표를 붙여서 남녀에 따라, 색깔에 따라, 성향에 따라 마음대로 가치를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즉 구별을 차별로 만든 것이고, 은혜를 죄로 바꾼 것이다.

이러할 때 소외가 일어난다.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외가 일어나는 것이다. 김 목사는 “자기 소외와 타자 소외는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는 오히려 다를 때 존재감이 느껴지며, 서로의 사고 방식이 다를 때 개인의 존재감과 가치가 빛난다. 다르다고 싸우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잊은 것이고 소외감을 만드는 것일 뿐이다.

세움 강좌의 모습

■ 다름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는?

남과의 차이와 다름을 두고 그러려니 하고 살 수 있을까? 피하면 상책일까?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즉 부부와 가족, 직장 등에서의 관계는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차이와 다름을 주의 깊게 다뤄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기독교적으로, 상호주관적으로 다뤄야 한다. 다름이 관계가 깊어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나와 다를 때 나의 태도는 굴복(타자 인정에 매몰되는 것), 지배(“내 말만 들어”), 수용, 인정의 형태로 나타난다. 김 목사는 “인간은 대상을 추구하는 존재로, 대상이 있을 때 내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며 “따라서 상대방은 정신적 산소이며, 서로가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개념을 정리한다. 즉 인간은 공존인간(human being-with)이다. 같이 있을 때 존재하는 게 인간이고 소통할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

하지만 상대가 있을 때 상처도 받는다. 상처를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목사는 거울을 가슴에 달았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의미다. 내가 말할 때 상대방이 딴 짓을 하면,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열심히 말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관심이 없다면 나는 얼마나 무시당하는 존재인가. 열심히 듣는 것 같지만, 우리는 그의 눈빛 태도 하나에서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단숨에 알아낸다. 상대방이 심리적으로 나에 대해 반응을 하는 것, 이런 것을 거울 반응이라고 한다. 만약 나에게 관심이 없다면 더 이상 그 거울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에 있는 내면 인격을 상대의 거울로 인해 추한 영상으로 보여진다면, 상대의 말과 표정과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거울이 결코 깨끗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거울이 깨끗하지 못해서 그들은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진지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얼룩이 있는 거울에 나를 비쳐주면 나 역시 얼룩지게 된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내 마음이 얼룩진다. 하지만 상대방이 깨끗한 거울이 되면 서로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거울은 하나님의 거울이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자꾸 나를 비치면 내 마음과 거울도 바르게 된다.

강의하고 있는 김기철 목사

■ 나됨과 너됨이 공존하려면

나와 다른 사람과 관계할 때 긴장하게 된다. 긴장은 대인관계에서 경험되는 ‘고무줄처럼 신축성과 탄력성이 있는 상태’를 말하며, 이 긴장으로 인해 우리는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고, 잠재적인 역동성을 갖는다.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긴장감을 소멸시키는 경우가 많다. 즉 상호존중으로서가 아니라 지배 또는 굴복으로 소멸시킨다. 한 편은 주인으로써 허탈하고 무의미한 지배가 이어지고, 한 편에서는 노예로써의 부끄럽고 불행한 굴복이 이어진다. 이것이 남녀차별 역사의 한 모습이다.

긴장을 회피하게 되면 안정감을 얻을 수 있으나 굴복과 지배로 나타난다. 긴장 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불편하지만 상호 인정을 얻게 된다. 바로 이 모습이 온전하게 하나되게 한다.

김 목사는 “일방적인 자기 희생적 사랑, 자기 중심적 사랑이 아니라, 상호주관적 사랑이 깊은 사랑을 가져온다”며, “서로 주관성을 인정하고 일방적 희생이나 굴복이 아니라 서로 깊은 친밀감으로 수용하는 것”을 바람직한 긴장 수용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나의 나 됨’을 위해서는 ‘너의 너 됨’이 필요한 것이다. 너의 너 됨이 있어야 나의 나 됨이 있을 수 있고, 너의 너됨이 있어야 나의 나됨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시는 방법이었다. 간음한 여자보고 죄 있는 자가 돌로 치라는 말은 매우 창의적으로, 상호주관적 관계를 세운 것이다. 그로 인해 온전한 돌봄과 치유가 이뤄진다.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다우심’이 존재하고, 또 나 역시 ‘나다움’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대로 살아야 하는데, 우리의 고유한 성격,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의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다우심을 표현해 드려야 하는 것이다. 김 목사는 “하나님의 주관을 펼쳐드리는 과정 속에서 나의 주관이 펼쳐져야 한다”며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자신의 개성으로 하나님 형상을 구현해야 한다. 내 안에 빛이신 예수님을 간직하고 있고 그 빛을 나만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김 목사는 또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는데, 그것이 힘든 이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관으로 자신의 삶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그게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교회 생활에서 역시 상호주관적인 관계가 펼쳐져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하나님이 주신 개성과 기질이 눌려져 있기 때문에 즐겁지 않다”며 “선명하게 새겨진 자신의 문양을 깨닫고 그 문양을 통해서 마음껏 훈련되어야 한다. 이런 상호 인정 속에서만이 진정한 ‘함께 함’이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김형준 기자  ccanca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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