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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바로 첫사랑입니다손학균 목사 동부연회 장로부부영성수련회 강의
김형준 기자 | 승인 2018.03.13 14:56


이 글은 장로회동부연회연합회(회장 김기기 장로)가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개최한 장로부부영성수련회에서 석사교회 손학균 목사가 설교한 내용입니다. 은혜되길 바랍니다.

손학균 목사
제목 : 첫 사랑 “갈 2:20~21”

강의하고 있는 손학균 목사

사람의 말 중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가장 기억이 남고 따뜻하게 합니다. 사람들끼리의 사랑이라도 이렇게 좋은데,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라면 병 못 고칠 사람 없고, 낙담하고 절망한 사람도 새 힘을 얻으며, 용기를 못 낼 사람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란, 사랑을 품는 사람이 사랑하는 대상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게 되거나 받게 되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은 변화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의 말대로 다른 것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재간이 없습니다. 돈, 지식,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같지만 변화되지 않습니다.

진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하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자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매다는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시는 그 사랑으로 인하여 변화하는 것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사랑만이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은 사람에게 무한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받을 때 사람은 가치를 부여받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이 부족하면, 왜 저렇게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라고 의문을 갖게 하는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얘기하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랑을 잊어버리고 다른 곳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각, 우리 마음, 우리 됨됨이가 최고의 가치있는 존재로서의 행동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질 세계 속에 살고 있어서 이 물질의 유혹에 자주 빠집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마음가짐, 바른 행동, 바른 언어를 못하고 왜곡합니다. 마음을 빼앗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으로 하나님을 돌아보지도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한 에베소교회에 대한 경고는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큰 사역을 이루고 신앙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후손들에게 물려줄만한 업적을 남기고 영적으로도 대단한 일을 쌓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에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고 말씀하시지는 않겠는지요. 잃어버리고 살았다면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세상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를 향해 대단하다고 인정하고 교회 구성원이 되고 싶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몰라”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중에 하늘 나라에 가서 "병든 자를 돌보고 아픈 자를 돕는 큰 일도 해 냈습니다"라고 보고 드리는데 “나는 너희를 모른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라고 말하지 않겠는지요. 불법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사역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첫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 키워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간에는 갈라디아서 말씀 속에서 바울 사도가 어떻게 첫사랑을 회복해 나가는가를 보고 첫사랑을 회복하는 길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 첫사랑을 회복하는 첫째는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선 첫사랑을 회복하려면 얼마나 함께 하고 있는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저는 목사이니까 제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교회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나면서 심방하고 기도하는데, 하루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었을까?” 생각해 봤는데, 목사로서 무의식적이며 기계적으로 주어진 일만 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에 계신 장로님들은 귀한 직임을 감당하시며 일을 하십니다. 하지만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고 계시는지요. 혹시 내 방식대로 주님과 상관없이, 주님의 일을 주님 없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거룩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 허물을 사해 주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목적이 거기에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주님은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심에도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동반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성삼위일체는 우리와 함께 하려고 하는데,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세상에 나아가 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에게는 대단한 역사, 사역 모든 것들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함께!”입니다.

우리 교회에 연세가 많고 편찮으신 분들이 많아서 기도해 달라는 분이 많습니다. 안수 기도할 때는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안수를 했는데도 병이 안 나을까 걱정해서입니다. 저는 주님에게 “성도들은 나을 거라고 굳게 믿는데, 안 나으면 어떻게 하죠?” 라고 질문했는데, “내가 능력이 있어서 낫는 게 아니라, 내가 도구가 되어 주님이 함께 얹어 주시니까 낫는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주님이 함께 손을 얹어주시면 병이 낫는 줄 믿습니다.

어렸을 때 강습회를 갔는데, 다리를 저는 강사 분께서 한 예화를 들려주셨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아이가 교회에서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병이 낫는 것을 들었습니다. 집에는 몸살이 심하게 와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열이 펄펄 나는 엄머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설교가 기억나서 “예수님, 우리 엄마 열 떨어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엄마의 열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니까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아이의 기도에도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일평생 살면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행·불행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 아니겠습니까?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면 함께 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면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결혼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함께 있고 싶어 하는데, 우리는 그 하나님과 얼마나 함께 하고 싶어하는지요.

처음에 믿음 생활할 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게 좋아서 매일 교회에 나갔고 성경 말씀을 보는 게 좋아서 열심히 성경을 봤는데, 어느 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뜨거운 마음이 어느 순간 뜸해졌습니다. 신문을 봐도 성경을 안 봤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으면 간단한 것부터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배 생활, 기도생활에 힘쓰고, 말씀을 더 사모하고 묵상하고, 설교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해야 합니다. 

가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이 나에게 신경을 끊으셨나봐’라고 생각들 때가 있습니다. 그게 아닌데도요. 야고보서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전신 거울에 다가가면 거울 속의 나도 다가옵니다. 뒷걸음치면 거울 속의 나도 더 멀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늘 가까이 하고 싶은데, 우리가 가까이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까이 하고 싶어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있는 것을 실감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엄청난 일이 아니어도 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영접하는데, 한 사람은 많은 일을 했고 한 사람은 함께 했습니다. 둘 다 귀하게 여겼지만, 주님은 함께 하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여러분도 더 가까이 하셔서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잊어버린 첫사랑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 첫사랑은 십자가에서 회복됩니다

첫사랑을 회복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잔혹한 처형 방법입니다.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감당하게 하고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임이 누구 때문인지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나 때문입니다.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가고 싶은 길, 내가 선택한 길로 가서 떠나게 된 것입니다. 궁사가 쏜 화살이 표적을 벗어난 것을 죄라고 합니다. 마땅히 가야할 길을 계획하시고 우리가 그 길로 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길을 이끄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이끄시고 우리는 따르는 것입니다. 믿음은 앞서 가는 게 아니라 이처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길로 가지 않고 내 하고 싶은 길, 하고 싶은 방법으로 가는 게 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든 죄악을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죄는 내가 졌는데 책임은 예수님이 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죽음으로 증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수학 문제를 풀면 답이 있고 그 사이에는 공식에 의한 증명이 있어야 합니다. 증명이 틀리면 답도 틀립니다. 답이 틀리면 증명도 틀립니다. 독생자가 십자가를 지고 가장 비참한 형을 받고 가장 나쁜 죄인이라고 죽임 당하셨습니다. 바로 내가 당할 죽음이었습니다. 그 책임을 예수님이 대신 지게 하시므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는 장소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훼방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저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셨는데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저주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은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고 저주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대신 달리신 것입니다.

첫사랑을 회복하는 자리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말씀처럼 무가치한 인류에게 가치를 부여한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로 시작하고 십자가로 완성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사랑을 회복하려면 십자가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랑을 깨닫고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속하셨다는 그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될 때에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만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게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해서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부담되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는 사랑이 확인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이 경험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나의 십자가를 발견하고 이를 불들고 지려면,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마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말씀에서처럼 우리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십자가가 작거나 큰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내 십자가는 왜 크냐고 투덜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크다는 것은 큰 사명을 준다는 것일 수 있지만 크기만큼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내 십자가를 찾아야 합니다.

요즘 세상이 너무 뒤숭숭합니다. 세상에는 믿고 따라야 할 곳이나 사람이 없습니다. 서로 불을 켜고 상대방의 잘못을 찾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정보가 많다 보니 요즘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 커지면 부모를 가르치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랑없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람에게 감동을 줘서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십자가에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 말이 바울에게는 큰 자랑이고 소중한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장로님께서 먼저 그런 모범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상대를 다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하지,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아는데 사랑이 없으니까 마음이 깨집니다. 첫사랑이 날마다 자라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손학균 목사 강의를 듣고 있는 동부연회 성도들

■ 우리 안에 주님이 가득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바울 사도의 고백을 보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가 중요하게 여겨질 때 나타나는 결론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내가 죽었기 때문에 내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때 “너 내 안에 있어”라는 말이 유행했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연인들에게는 최고의 고백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속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지나가는 손님이나 과객이 아니라 우리 안에 주인 자리를 차지한다는 뜻입니다.

제 막내가 군대에 가고 나서 빈 방을 보고 횡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군대에 간 아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때 아들과는 떨어져 있지만, 더 제 안에 가득차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떨어져 있어도 내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득히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으로 가득히 채워질 줄 믿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중심에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가 만들어지고 점점 커지고 그 사람의 존재가 들어옴으로 생각과 의지가 그 사람에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밖에 있다가 깊어질수록 어느 순간 훅 내 생각 내 마음 내 말, 내 꿈에도 들어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차지하는 비중이 작고 미약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이 커질수록 영향력이 커집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싶어도 내 뜻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데로 말과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내가 비워지고 사랑하는 대상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저는 기억나는 행복 중에 첫 아이 임신했을 때 일이 있습니다. 첫 아들이 임신되었을 때 제가 있던 곳은 서산 시골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들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말로 아내가 뭐가 먹고 싶다고 했을 때 저는 몰래 자전거를 타고 그것을 사러갔습니다. 읍내로 나가려면 걸어서는 50분, 자전거로는 20~30분인데도 아내가 맛있게 먹을 것을 생각하고 신나게 달려갔습니다. 사랑하면 바보가 되어서 자기 생각, 자기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혼자 말하는 것도 이뤄주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랬습니다. 민수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한사람 한 사람 말을 듣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내 귀에 들리는 대로 응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항상 듣고 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혼잣말을 해도 듣고 계시고 다 이뤄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느냐는 겁니다. 이사야가 영적으로 하늘 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천군천사와 회의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굴 보낼까?”라고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이사야는 “제가 여기에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십시오. 나를 써 주시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사랑입니다.

나는 원하여도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지 않으면 내 생각과 뜻을 내려놓습니다.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싫어도 하지 않습니까? 사랑은 본질상 손해보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너무 계산에 빠삭해서 조금도 손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말로는 사랑을 하려고 하지만 실제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손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손해 보는데, 기분이 나쁠까요? 손해보면서도 행복합니다. 행복한 손해인 것입니다.

■ 첫사랑을 회복하면 인생에 많은 열매가 맺어집니다

첫사랑을 회복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하나님과 함께하고 십자가에 내가 죽은 첫사랑이 회복될 때 인생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기 때문에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함께 하는데 실패하면 내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하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자녀가 하나님과 함께 하길 바랍니다. 장로님들께서 성도들님이 하나님과 함께 해 주길 바랍니다. 그래야 실패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확인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 에수 그리스도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고, 영원한 생명의 복을 받게 되심을 믿기 바랍니다.

에수님은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능한 자처럼요. 하지만 십자가를 통과하셨을 때 넘볼 수 없는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십자가의 사랑이 회복되면 우리 삶 속에서도 그런 영광이 주어집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시고 발견하고 짊어지고 걸어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생명이 주어질 것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다가 죽으면 영광을 받고, 사랑하며 살아가면 우리를 강건하게 작용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중요합니다. 내가 비어지고 내 안에 주님이 살게 되면 삶에 열매가 맺어집니다. 살아가면서 열매는 맺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시골마을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는데요. 눈을 부릅뜨고 봐도 농부가 아무리 기술좋고 성실해도 직접적으로 열매를 맺게 못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자연도 우리가 직접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가르쳐 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의 열매도 하나님이 맺어주십니다.

내가 노력해도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내가 열매를 맺게 하려면 실패하게 됩니다. 내 안에 주님이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되면 실패하지 않고 영광과 생명이 주어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열매를 맺어준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첫사랑을 키워나가서 실패하지 않고 생명력으로 충만하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장로님들이 되길 바랍니다.

 

김형준 기자  ccanca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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